인천 자유공원 (한국최초의 서구식 공원)
길은 이어져 인천 자유공원에 왔습니다.
예전에 여름 무렵에 들려 본 기억이 있는 곳이라 그래도 반갑습니다.
역사적 사료를 살표보니 고종 때 계획을 하고 설계한 공원이라 합니다.
그 당시 각축을 벌이던 미-일-영-러-청 각국의 발제로 만들어진 곳이라 하네요. 그래서 예전의 이름은 '각국공원' 또는 '만국공원'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후 맥아더장군 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공원'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주차
주차는 바로옆에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현재는 무료로 운영 중입니다.

주차장을 나오니 옆으로 인천학도호국단 위령비가 보입니다.
신포시장 앞에서 6.25 때 참전했던 학생의 기념관을 본 적이 있습니다.
16살 애띤 얼굴의 소년은 어떤 마음으로 전장의 한가운 데에서 생을 마감했을까요?
역사의 비극은 예전에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며 절절히 느꼈습니다.
"형, 우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전쟁의 비극 속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싸우게 된 형제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바라던 그때는 그저 서로 웃으며 국수 한 그릇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의 면면을 지켜보았을 큰 나무들은 오늘도 말없이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되고 나무들은 초록에 덮이겠지요..


공원 초입에 조류원이 보입니다.
겨울이라서 새들은 보이지 않는데, 주변의 나무에 있는 새들의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옵니다.



조금 올라가 보니
유명한 맥아더장군 동상과 문제가 되었던 인천상륙작전 기념 부조가 보입니다.

1957년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여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이곳에 세우고 그때부터 이공원을 '자유공원'이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새롭게 제작된 부조물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유명한 부조물의 장면은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사진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다시금 문제가 제기되는 일들이 요즘 왕왕 일어나곤 합니다.
"역사의 진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잊은 국민의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왜곡되거나 아예 다르다면..
그래서 역사적인 사실들이나 인물의 고증에 충실해야 합니다.


바람직하게도
지난 시간의 잘못과 오류를 기록하고 과거의 실수도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공원 한편에는 카페도 있네요,
그때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023이란 숫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블로그 글들을 살펴보아도 왜 023인지는 나와있지 않네요.. 다음에 가보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2층엔 루프탑? 도 있다고 하는데 겨울이라서 보이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예전에 그냥 잡화점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변모하다가 지금은 이 카페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런 히스토리들을 사진으로 엮어 기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근대 이후 사진기가 보급되었으니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오래된 사진 전시회를 해서 사진 사료를 모아보면 어떨까요?
인천의 근대장소들을 들를 때마다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곳은 어떻게 변모되어 왔을까?


조금 더 걸으니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1982년에 한미수교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건립된 조형물이라고 하는데 그 시절에는 보기 어려웠을
나름 세련된 현대 디자인의 탑입니다.




둘러보니 오래된 정자들이 많습니다.
흔히 보던 그런 곳들인데 항상 이상하게도 저는 이런 곳을 보면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팔각정이 생각납니다.^^;



공원 한편에 오래돼 보이는 것이 있어 보니 자연보호헌장이 새겨진 표지석입니다.

길은 이어져 차이나타운의 입구가 보입니다.
